5개의 학과가 모여 있는 어느 단과대학에서는 매년 체육대회를 통해 친목 도모를 외쳤지만, 실제로 각 학과들에겐 자존심이 걸린 전쟁과도 같은 행사였다. 안타깝게도 그 전쟁터 속에서 샌드백 같이 매년 얻어터지고 꼴찌 경쟁을 하는 학과가 있었는데, 바로 내가 속한 곳이었다. 신입생 때 혜성처럼 등장해서 선배들로부터 ‘학과의 희망’이라고 불렸던 나는, 군 제대 후 아웃사이더 복학생이 되어 있었다. 그나마 복학 직후에는 여자 동기들이라도 있었는데, 3학년이 되니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남자 동기들은 다들 나보다 군대를 일찍 간 탓에 듣는 수업이 전혀 달랐다. 그렇게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신입생은 초라한 아웃사이더 복학생이 되어 버렸다.
어느 때와 다름없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갑자기 선배들로부터 호출이 왔다. 학과 일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가뿐히 무시하고 집으로 향했다. 2시간 정도 지났을까, 다시 걸려온 전화기 속에서 선배들이 나를 찾는다며 빨리 와달라는 동기의 절규를 듣게 되었다. 그렇게 학과로 향한 나의 눈에 보이는 건 얼차려를 받고있는 동기들의 모습이었다. 얼차려의 이유는 바로 나였다. 동기 관리를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지금의 나라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당시의 나는 꽤나 혈기왕성했기 때문에 무작정 얼차려를 지시한 선배를 향해 몸을 날렸다. 놀란 동기들과 선배들이 나를 막아섰고, 그제야 얼차려를 멈출 수 있었다. 물론 다른 동기들은 다 집으로 갔고, 나만 선배들과 남게 되었지만 말이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갑자기 겁이 났다. 단순한 혈기로만 맞서기에는 당시 선배들은 너무 무서웠다. 다행히 추가적인 얼차려 없이 1시간 넘게 잔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귀에서 피가 나는 것 같다.
선배들이 우리 동기들을 부른 이유는 한 가지였다. 체육부장을 뽑기 위해서였다. 원래라면 더 일찍 뽑았어야 했는데, 무슨 사정이었는지 모르지만 늦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선배들은 입을 모아 올해 체육부장을 나에게 맡겼다. 학과 활동도 거의 하지 않는 나에게 체육부장을 맡긴다는 것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지만, 선배들은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어떤 말도 통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선배들에게 등 떠밀려서 체육부장을 맡게 되었다. 제대를 했지만,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남자 선후배의 관계는 여전히 군대의 그것과 똑같았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너무나 짜증 나고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소시민인 나는 변화를 위해 움직일 의지가 전혀 없었다.
단과대학 체육대회를 위해 각 학과의 체육부장들이 모였다. 일정과 비용, 진행 등 전반적인 부분에 대한 의논을 하기 위한 자리였다. 회의는 큰 문제없이 마무리 되었고, 이후에는 체육부장들 간의 사담이 오고 갔다. 회의가 끝났기 때문에 서둘러 자리를 뜨려고 했으나, 갑자기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목적이 나와 우리 학과를 조롱하기 위한 것임을 깨달았을 때, 나는 그 x끼를 향해 몸을 날렸다. 다행히 다른 학과의 중재로 인해 큰 사고는 없었지만, 너무 화가 났다. 그리고 체육대회에서 반드시 그 x끼가 있는 학과보다는 높은 순위를 얻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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