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싸웠던 녀석의 학과보다 높은 순위를 받기 위해 의지를 불태우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 학과의 학생들이 강제로 행사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만큼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자고로 학교 행사란 건 학생들이 즐겨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고, 아마도 그 녀석과 싸우지 않았다면 순위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다.
기본적인 테마는 모든 학생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체육대회를 만드는 것이었고, 이를 만들기 위한 기획단을 구성했다. 동기들이 든든한 지원군으로 나서 주었고, 평소 알고 지내던 몇몇 선후배들도 도와주었다. 덕분에 좋은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고, 체육대회를 위한 준비가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드디어 대망의 체육대회 당일이 되었다. 남자의 숫자가 부족한 우리 학과의 특성상, 대부분의 운동 경기에 내가 뛰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자기 자랑을 조금 하자면) 운동을 잘 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거기에 체육 부장이었기 때문에 우리 학과가 뛰지 않는 경기에서는 심판도 봐야 하는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그래도 운동을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직접 경기를 뛰는 것도, 다른 팀의 심판을 보는 것도 너무 재미있고 즐거웠다.
바쁜 일정으로 인해 우리 학과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학과의 선배들이 잘 챙겨주었다. 그리고 선후배들 모두 즐겁게 참여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들의 속마음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함께 하는 그 순간만큼은 정말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감사하게도 (신입생 시절의) 나를 귀여워해 주던 졸업한 선배들도 찾아와 물질적·정신적 지원을 해주었고, 그런 도움들이 모여 우리 학과에 소속된 대부분의 학생들이 체육대회에 참여하였다. 오히려 참여 인원이 너무 많아 공간이 부족한 탓에, 부득이 다른 학과의 양해를 구해 비어있는 자리를 추가로 얻어야 했다. 하지만 문제라고 하기엔 너무 행복한 고민이었고, 참여한 모두가 즐기는 체육대회라는 의도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이제 남은 건 모든 학과의 최종 점수와 순위였고, 나의 관심은 회의 때 나와 싸웠던 녀석이 속한 학과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었다. 매번 꼴찌 1순위였던 우리 학과의 반란(?)으로 인해 모든 학과의 점수가 엇비슷한 상황이었고, 체육대회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릴레이 달리기만 남은 상황이었다. 원래는 내가 마지막 주자로 뛰어야 했지만, 축구 결승에서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다른 선배가 대신 뛰어주기로 했고, 나는 초조하게 결과를 지켜봐야만 했다. 모든 주자가 결승점을 통과했다.
마침내 끝난 체육대회의 우승은 우리 학과의 차지였고, 우리는 그 해 체육대회의 주인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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