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보면 다사다난했던 중학교 시절이지만, 다행히 엇나가지 않고 바르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복실이]가 항상 내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힘들 때마다 언제나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지켜봐 주던 그 아이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나에게 긍정적인 힘을 주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나에게 아픔을 줄 때, [복실이]는 내가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상대였다. 그 아이를 쓰다듬는 것만으로 마음이 진정되고, 아무런 걱정 없이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그 아이였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어머니께서 가게를 정리하시면서, 나는 다시 예전에 살던 동네로 돌아가게 되었다. 아버지의 직장은 원래 예전 동네에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다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행복한 추억이 가득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나의 마음은 심란했다.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중학생이 되어 만났던 소중한 친구들과 헤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함께 오락실을 가고, 농구를 하고, 쉬는 날엔 함께 모여 놀았던 추억을 공유한 친구들과 이별을 한다는 사실이 슬펐다.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정들었던 곳을 또 다시 떠나게 되었다.
다시 돌아온 동네는 이미 추억 속 행복하기만 했던 곳이 아니었다. 내가 변했듯이 친구들도 많이 변했다. 나는 또 다시 그 곳에서 이방인이었고, 그들의 텃새를 경험해야 했다. 당시 또래의 일진은 다른 초등학교 출신의 아이들이었고, 내가 다니던 학교의 친구들은 나의 갑작스런 전학을 원망했기에 나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예전에는 가장 친했던 친구들 역시 지나간 시간만큼이나 어색했고 그 관계를 회복하는 건 어렵게 느껴졌다. 이곳에서도 내가 마음을 둘 곳은 없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당장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기에 [복실이]를 품에 안고 겨우 잠을 청했다.
[복실이]는 단 한 번도 나에게 어떤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알려준 적이 없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내가 문제의 답을 해결하는 순간, 언제나 나의 곁엔 그 아이가 함께 있었다. 함께 있으면 내가 가지고 있는 어려움과 힘든 마음을 숨김없이 말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상황이나 맥락이 정리되면서 해결책이 떠오르곤 했다. 어쩌면 그 아이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만난 ‘상담가’인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와 함께 하며 깨닫게 된 사실 중 하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마음의 짐을 줄이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정신건강 분야에서 일을 하는 지금도, 당장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편이다. 그 아이가 나에게 준 소중한 교훈은 내가 지금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바뀐 환경에 적응하기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고 고등학생으로서 최선을 다하고자 결심했다. 한 때는 꿈을 잃어버린 공허함에 방황을 했지만, 우선은 학생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기로 했다. 참고서를 사고, 문제집을 풀며 그 동안 소홀히 했던 공부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운동만 하느라 중학교 시절 내내 외면했던 시간들이, 이제는 성적이라는 이름으로 날아와 내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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