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 봐!’
평소에 걷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특별한 목적지가 없어도 무작정 걷곤 했다. 군대에 가기 전, 내 발길이 닿는 이곳저곳을 다닐 수 있다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찾고 싶어 했던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사 아무것도 찾지 못하더라도 그 경험 자체가 나에게 큰 재산이 될 것 같았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복실이]를 힘껏 안아주었다. 그리고 백번도 넘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인생의 어려운 순간마다 그 아이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고맙다는 말을 더 많이 한 것 같다. 나의 그러한 표현에 그 녀석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아이가 없었다면 진짜로 미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1학년의 두 번째 학기, 주 4일 공부를 하고 3일을 쉴 수 있도록 수업 계획을 했다. 최소한 3일이라는 시간은 있어야 마음껏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1학기를 마치고 방학 동안에는 여행 경비 마련을 위한 아르바이트도 했다.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학기 중에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는 모았던 것 같다. 학기 중에 아르바이트를 하면 여행을 마음껏 떠날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드디어 내 인생의 두 번째 대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대학생의 본분을 망각한 시기였던 것 같다. 수업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겨우 출석만 유지한 채 모든 생각은 여행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끔 생각의 정리가 필요할 땐 [복실이]를 찾아갔다. 그 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기도 했지만, 그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 아이는 차를 타면 멀미와 함께 구토를 했다. 그리고 조그마한 몸으로 내가 걷는 거리를 함께 할 수도 없었다. 결국 나는 여행을 마치고 나면 그 아이와 함께 산책을 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으로나마 여행의 경험을 공유하기로 했다.
사실 나의 여행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여행의 목적은 생각 정리, 그리고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찾는 것이었기 때문에 유명 여행지를 가는 일은 드물었다. 여행은 마치 [복실이]와 산책하는 것 같았다. 발길이 닿는 대로,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나의 몸을 움직였다. 아무 계획 없이 기차역에 간 뒤 그 날 첫 번째 운행하는 기차를 타고 간다던지, 혹은 버스정류장에서 눈에 들어오는 지역의 티켓을 끊어서 타고 가는 식이었다. 때로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의 차를 얻어 타고 어딘지 모를 곳에 내리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여행지에 도착한 이후에도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어떤 때는 시골 마을의 바쁜 일손을 돕고 한 끼 얻어먹기도 하고, 마을 이장님의 배려로 마을회관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특히 그 지역의 어른들에게 인사만 잘해도 그 분들의 후한 인심 덕분에 공짜로 먹고 잘 수 있는 상황들이 많았는데, 그래서 지금도 나는 어른들을 만나면 꼬박꼬박 인사를 하는 편이다. 아무튼 이런 여행 스타일 덕분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의 경험도 함께 공유할 수 있었다. 다양한 상황과 환경을 만나게 된 건 덤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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