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은 2006년 6월에 멈추게 되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은 가야하는 병역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였다. 정말로 군대에 가기 싫었다. 노동 착취라고 생각했고, 가장 빛나는 청춘들의 시간을 국가가 빼앗아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에는 크게 변함이 없지만, 예전만큼 군 입대를 싫어하진 않는다. 첫 번째 이유는 내가 이미 제대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그 안에서 경험한 것들 중에도 나름 도움이 되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군 입대를 앞두고 가장 걱정되는 존재는 당연히 부모님이었다. 장남이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지, 나 없이도 잘 지내실 수 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나의 마음을 힘들게 한 건 우습게도 여자 친구가 아닌 [복실이]였다. 군 입대를 결정한 순간부터 여자 친구와는 언제든 헤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마음 정리를 하고 나니 오히려 [복실이]가 마음에 걸렸다. 아직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조금씩 세월의 흔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혹여나 나의 부재가 이 아이의 마지막을 앞당기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나에게 그 아이가 유일한 존재인 것처럼, 이 아이에게도 나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임을 알기에 걱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졌다.
시간은 흘러 군 입대를 하게 되었다. 2년의 시간은 마치 20년처럼 느리게 지나갔다. 서울에서 복무했기에 지방에 있는 본가에 내려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정기휴가 때에만 한 번씩 본가에 갈 수 있었으니 횟수로 보면 2년 동안 겨우 4번 정도 본가에 갔다. 당연히 아쉬움은 있었지만 나름대로 좋았던 부분도 있었다. 그동안 내가 살던 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된 환경 덕분에 주변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고, 나 자신이 생각보다 환경에 적응을 잘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군대 안에서 기도를 참 많이 했던 것 같은데, 대부분 가족들이 무사히 잘 지내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전역할 때 내 주변의 그 누구도 아프지 않고 건강한 모습으로 있길 바랐고, 그 중 [복실이]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나의 기도가 닿았는지 전역 후 내 주변의 그 누구도 다치지 않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군대에서 경험한 부분은 그게 다야? 도움 되는 부분이 있다더니?’
누군가는 이렇게 물어볼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면 그게 전부다. 하지만 군대 안에 있으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은 덕분에 지금도 나에게 가족은 매우 소중한 존재이다. 하지만 단순히 소중하다는 말만으로는 설명하기 부족하다. 뭐라 꼬집어 표현할 수 없지만, 전역 후 나에게 가족은 소중한 존재 그 이상이 되었다. 표현력이 부족한 관계로 이 정도가 한계이지만, 그럼에도 그 경험은 나에게 소중한 존재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기회였다.
전역 후 잃어버린 관계도 있다. 신입생 때부터 만난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나쁘게도 내가 헤어지자고 했다. 더 이상 여자로 보이지 않는다는 모진 말로 상처도 줬다. 그 분이 나에게 준 것이 참 많은데, 나는 그만큼 주지 못했고 믿음에 보답하지도 못했다. 아마 평생 미안해하며 살아갈 것 같다. 언젠가 결혼했다는 말을 들었다. 좋은 가정을 꾸려 항상 행복하길 기도한다. 그리고 그 추억에 보답할 수 있도록 나 역시 행복하게 살아가고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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