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ea story : 나 그리고 세상/1. 복실이에게 보내는 편지

[복실이에게 보내는 편지] Ep10. 여유

고려로드[coreaLord] 2024. 11. 16. 01:09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시간이 참 많다. 빡빡하기 그지없는 고등학교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시간적으로 여유로워지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다. 나 역시 그 시기에 친구들과 다양한 경험을 했었고, 무엇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여유롭고 편안한 상태에서 [복실이]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다시는 오지 않을 그 순간을 그 아이와 함께 하며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는 아쉬움이 남아 있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수능 이후에도 학교에는 가야 한다. 사실 학교에 가도 공부를 하는 건 아니라서 별로 의미는 없지만, 그래도 출석은 중요하니까 주어진 일정에 따라 등교를 했다. 그러다보니 어느 새 정규 일정을 모두 마치게 되었고 드디어 고등학교 시절의 마지막 방학이 찾아왔다. 절친한 친구들과 가끔 얼굴을 보는 것 이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 덕분에 [복실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물론 내 인생에 있어 다시 오지 않을 여유가 허락되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그 시간들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역시 여유롭게 집에서 [복실이]와 보냈던 시간들이었다.

 

아침이 되면 언제나 [복실이]가 나를 깨워주었다. 간혹 잠이 덜 깬 날에는 나를 깨우러 온 그 아이를 그대로 품에 안고 다시 잠들기도 했는데, 왠지 그 때마다 더 달콤하게 잠들었던 것 같다. 어쨌든 아침에 잠에서 깨면 부스스한 머리를 모자로 가린 채 그 녀석과 함께 산책을 나갔다. 현관에 걸려있는 목줄을 잡기만 해도 꼬리를 흔들며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그 아이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그렇게 목줄을 채우고 나면 자연스럽게 동네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특별히 정해진 코스는 없었다. 그냥 그 녀석이 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발길을 옮기다 힘들어하면 잠깐 쉬기를 반복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1시간 넘게 산책을 하고 돌아와서 함께 씻은 뒤 각자의 자리에서 밥을 먹었다.

 

[복실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는 바로 나의 다리 위이다. 밥을 먹고 나면 보통 소파에 앉거나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데, 그 때마다 그 아이는 내 옆을 껌 딱지처럼 따라다니며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에 자리를 잡고 웅크린다. 나도 그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몇 시간이고 그 자세를 유지한 채 각자 할 일을 했다. 그러다보면 어느 새 점심시간이 되는데, 역시나 각자의 자리에 앉아 밥을 먹은 뒤 두 번째 산책을 나간다. 아침과 마찬가지로 정해진 코스 없이 그 녀석의 발길이 닿는 곳을 따라 1시간 정도 돌아다니다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늦은 오후가 되면 컴퓨터를 켜고 게임을 시작한다. 의자에 앉은 나의 다리 사이는 역시나 [복실이]가 자리를 잡고 엎드려 있다. 게임을 하는 도중 갑자기 [복실이]가 내 다리를 살살 긁는 느낌이 나는데, 엎드려 있기만 한 것이 지루했던 모양이다. 그러면 게임을 끄고 거실로 나가 강아지 장난감을 가지고 그 녀석과 함께 놀기 시작한다. 그렇게 놀다보면 어느새 저녁이 되고 우리는 저녁을 먹는다. 이후로는 가족들이 다함께 모여 시간을 보내고, 밤이 되면 함께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