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ea story : 나 그리고 세상/1. 복실이에게 보내는 편지

[복실이에게 보내는 편지] Ep14. 달리기

고려로드[coreaLord] 2024. 11. 23. 01:17

 

 

[복실이]와 함께 한 덕분에 이별의 순간을 잘 이겨낼 수 있었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경험들로 인해 나는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복실이]가 내 옆에 있었다. 어쩌면 그 아이 덕분에 나는 점점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강아지 때부터 맺어온 인연의 끈 덕분에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아온 것 같다. 그리고 그 아이도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8102일의 어느 저녁, 같은 교회에 다니는 2살 어린 동생에게 용기를 내어 사귀자고 말했다. 그날은 진주 남강 위에 수많은 유등이 반짝이고 있는 유등축제기간이었다. 앞서 광안리에 그 친구와 데이트를 하러 갔는데, 용기가 없던 나는 마지막까지 고백하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그 친구는 나의 고백에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버스 안, 지금도 그 때의 두근거림은 잊을 수가 없다.

 

[복실이]에게 새로운 여자 친구가 생겼음을 알렸다. 그 과정이 궁금할 수도 있으니 산책을 하며 차근차근 이야기를 했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누웠고, 그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수도 없이 같은 말을 반복했지만 나는 마치 처음 하는 이야기 마냥 그 아이에게 신이 나서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을 계속 들은 [복실이]는 얼마나 지겨웠을까 싶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들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전역 후, 아니 정확하게는 새로운 여자 친구를 만난 후 나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여행을 멈췄다는 사실이다. 여자 친구가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 다른 이유는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입대 전 여행을 다니면서 망쳐놓은 학점을 어느 정도 복구해야 했고, 내 나름대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변화가 필요했다.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취업을 위한 공부를 나 역시 하게 된 것이다.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는 불편한 마음이 있었지만, 가까운 미래에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라고 위로했다.

 

목표도 없이 무작정 뛰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은 여전히 찾지 못했고,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깊이 하지 못했다. 다만 무엇을 하든 잘 할 수 있다는 자만에 가까운 자신감만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달리다 지칠 때는 항상 [복실이]를 찾았다. 그 아이를 품에 안고 누워 있으면 모든 스트레스와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함께 산책을 다녀오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단순하게 비워지는 것 같았다.

 

[복실이]가 주는 위로 덕분에 힘든 시기를 무사히 버텨낼 수 있었다. 정확하게는, 힘든 시간 속에서 마음과 몸이 상하지 않은 채 결승점을 통과할 수 있었다. 휴학 한 번 없이 대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드디어 취업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처음부터 대기업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던 덕분인지, 의외로 빠르게 취업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취업을 위한 시간 동안에는 마음고생도 했지만, 그래도 불평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졸업 후 몇 달 뒤, 부산에 위치한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본가와 회사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자취를 시작해야 했고, 또 다시 그 아이와 헤어져야 했다. 하지만 이번엔 무게감이 달랐다.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이제 그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