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실이]와 함께 한 덕분에 이별의 순간을 잘 이겨낼 수 있었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경험들로 인해 나는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복실이]가 내 옆에 있었다. 어쩌면 그 아이 덕분에 나는 점점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강아지 때부터 맺어온 인연의 끈 덕분에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아온 것 같다. 그리고 그 아이도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8년 10월 2일의 어느 저녁, 같은 교회에 다니는 2살 어린 동생에게 용기를 내어 사귀자고 말했다. 그날은 진주 남강 위에 수많은 유등이 반짝이고 있는 유등축제기간이었다. 앞서 광안리에 그 친구와 데이트를 하러 갔는데, 용기가 없던 나는 마지막까지 고백하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그 친구는 나의 고백에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버스 안, 지금도 그 때의 두근거림은 잊을 수가 없다.
[복실이]에게 새로운 여자 친구가 생겼음을 알렸다. 그 과정이 궁금할 수도 있으니 산책을 하며 차근차근 이야기를 했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누웠고, 그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수도 없이 같은 말을 반복했지만 나는 마치 처음 하는 이야기 마냥 그 아이에게 신이 나서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을 계속 들은 [복실이]는 얼마나 지겨웠을까 싶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들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전역 후, 아니 정확하게는 새로운 여자 친구를 만난 후 나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여행을 멈췄다는 사실이다. 여자 친구가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 다른 이유는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입대 전 여행을 다니면서 망쳐놓은 학점을 어느 정도 복구해야 했고, 내 나름대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변화가 필요했다.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취업을 위한 공부’를 나 역시 하게 된 것이다.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는 불편한 마음이 있었지만, 가까운 미래에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라고 위로했다.
목표도 없이 무작정 뛰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은 여전히 찾지 못했고,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깊이 하지 못했다. 다만 무엇을 하든 잘 할 수 있다는 자만에 가까운 자신감만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달리다 지칠 때는 항상 [복실이]를 찾았다. 그 아이를 품에 안고 누워 있으면 모든 스트레스와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함께 산책을 다녀오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단순하게 비워지는 것 같았다.
[복실이]가 주는 위로 덕분에 힘든 시기를 무사히 버텨낼 수 있었다. 정확하게는, 힘든 시간 속에서 마음과 몸이 상하지 않은 채 결승점을 통과할 수 있었다. 휴학 한 번 없이 대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드디어 취업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처음부터 대기업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던 덕분인지, 의외로 빠르게 취업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취업을 위한 시간 동안에는 마음고생도 했지만, 그래도 불평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졸업 후 몇 달 뒤, 부산에 위치한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본가와 회사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자취를 시작해야 했고, 또 다시 그 아이와 헤어져야 했다. 하지만 이번엔 무게감이 달랐다.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이제 그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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