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ea story : 나 그리고 세상/1. 복실이에게 보내는 편지

[복실이에게 보내는 편지] Ep17. 새로운 시작

고려로드[coreaLord] 2024. 11. 23. 01:22

 

 

진로를 변경하기로 마음을 굳힌 날, [복실이]를 품에 안고 한참을 떠들었다. 그동안의 상황들과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 등 모든 것을 그 아이에게 말했다. 그 아이는 언제나 그렇듯 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나 역시 편안한 마음으로 모든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그러는 동안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엉켜있던 내용들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고, 앞으로의 미래를 그려나갈 자신감도 생겼다. 희한하게도 그렇게 나의 생각이 정리되고 자신감이 차오를 때 즈음, 그 녀석은 나를 향해 가볍게 짖어댔다. 축하의 의미인지, 격려의 의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이 아이가 나에게 힘을 주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복실이]를 품에 안고 일어난 아침, 기분은 제법 괜찮았다. 이제는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할 것인지 아니면 일을 그만두고 공부에 전념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을 유지하면서는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야근과 주말 출근을 밥 먹듯 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이 곳에서 공부를 병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은 채 공부에만 전념할 수도 없었다. 모아놓은 돈은 있었지만 이미 결혼 자금으로 묶어 놓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한 번 쓰기 시작하면 아마도 통장 잔고가 바닥 날 때까지 쓸 것 같았다. 그래서 공부와 병행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찾기로 했다. 다행히 동네에 있는 학원에서 강사와 총무를 겸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부산에 있는 한 디지털대학교에 편입하여 공부를 시작했다. 사이버대학이지만 사회복지 자격증을 따기엔 충분했다. 무엇보다 환경적으로 일반 대학교 혹은 대학원을 다니는 것은 쉽지 않았다. 모든 것을 나 스스로 감당해야 했기에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이후의 일에 대한 고민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해쳐나갈 자신이 있었다.

 

새로운 길을 향한 계획을 세우고 마음의 준비를 마쳤지만 현실은 그대로였다. 평일엔 여전히 회사에서 열심히 일했고, 주말이 되면 본가에 내려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복실이]의 노화가 조금씩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5년 정도를 함께 보낸 내 영혼의 단짝은 조금씩 쇠약해져갔다. 누워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고, 먹는 것도 예전 같지 않았다. 동물병원에서 진찰을 받아보았지만 특별히 건강상의 문제는 없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세월의 흐름을 막을 수 없기에 그저 남은 시간을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이제 서서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앞으로 오랜 시간을 살 수도 있지만, 반대로 가까운 시일 내에 무지개다리를 건널 수도 있었다. 평일에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노라면 때때로 [복실이] 생각에 안절부절 못할 때가 있었다. 여전히 주말이 되면 그 아이와 함께 산책을 했지만 이제는 앞마당을 겨우 돌아다닐 뿐이었다. 동물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 당시에는 이 녀석과 조금만 더 함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참 많이 했다. 나의 새로운 시작을 지켜보기만 해줘도 좋을 것 같았고, 그 때 내 옆에 이 아이가 있기만 해도 큰 힘이 될 것 같았다. 이 아이에게 조금만 더 같은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건강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