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1일 새벽, 밤새 힘없이 내 품에 안겨 있던 녀석이 갑자기 기운을 차린 듯 스스로 일어나 걸어 나왔다. 그리고 엎드려 있던 나의 얼굴 앞으로 다가와 내 눈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그리고 앞발로 나의 얼굴을 톡톡 건드렸다. 내 얼굴을 두드리던 그 앞발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나 역시 그 아이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복실이]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고, 약속이나 한 듯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얼마 뒤 그 아이는 천천히 걸어서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 엎드렸고,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다시 여기로 오라고 손짓했지만 그저 가만히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녀석의 머리를 몇 번 어루만진 뒤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교회 예배당에 앉아 예배를 드리면서 참 많이 울었다. 그 곳에는 각자의 사정으로 기도하며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의 모습이 특별하지는 않았다. 예배를 마치고 내가 해야 할 모든 일정을 마치고나니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하나씩 밟고 올라가는 동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나를 반겨주던 그 아이의 어떤 것도 보거나 들을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울었기 때문인지 눈물은 나지 않았다. 녀석이 떠났음을 이미 알고 있던 어린 동생들도 눈물짓지 않고 담담하게 앉아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뒷산에 그 아이를 묻어주고 방으로 들어왔다. 마음 한 쪽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처럼 허전했지만, 아무것도 아닌 표정으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슬펐고, 고마웠고, 미안했고, 그리웠다. 현실이 아닌 것 같았고, 자고 일어나면 언제나 그랬듯 그 아이가 나를 깨워줄 것만 같았다. 마음을 추스르고 거실에 있는 동생들을 안아주며 씩씩한 모습을 칭찬해주었다. 그러자 동생들이 그 작은 손으로 내 어깨를 보듬어주며 나에게 말했다.
“[복실이]가 고맙다고 전해달래.”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동생들에게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한 뒤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부모님께서도 마음이 허전하신지 별다른 말없이 거실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지만, 표정에는 알 수 없는 감정들을 가득 담고 있었다. 부모님의 표정과 동생들이 전해준 말을 가만히 곱씹어보았다. 동생들은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웠고, 부모님은 역시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부모님과 동생들의 눈에도 나의 모습은 담담했을 것 같다고 느꼈다. 우리 가족 모두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뚫려버린 구멍을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소중한 식구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이제는 제법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지낼 수 있게 되었을 무렵,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디지털대학교에 편입했다. 동네 학원에서 강사와 총무 일을 하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열심히 공부를 했다. 진로를 바꾼 만큼 남들에 비해 늦었지만, 그만큼 간절한 마음도 컸다. 그렇게 보낸 2년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고, 오히려 재미있었다. 가끔 지치고 힘든 순간이 찾아오면 그 아이 생각이 났지만 나 스스로도 대견하다 느낄 만큼 씩씩하게 잘 견뎌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씩씩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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