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실이]는 우유를 싫어한다. 우유만 먹으면 배탈이 났다. 그렇게 언젠가부터 그 아이에게는 우유를 주지 않게 되었다. 나도 우유를 먹으면 탈이 나는 경우가 잦았다. 나 역시 우유를 즐겨 먹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집 냉장고에는 우유가 있는 날보다는 없는 날이 더 많았다.
어느덧 군 입대를 해야 할 순간이 다가왔고, 면제를 꿈꿨지만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군대에 가게 되었다. 휴가를 얻어 본가에 가게 되었는데, 본가에는 우유 하나가 있었다. 내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부모님께서 ‘밀크’라는 이름의 강아지를 분양받으셨다고 했다. 그 우유는 생전 처음 본 나를 보고 반가운 듯 꼬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이내 [복실이]의 무력 앞에 꼬리를 내리고 동생들의 품에 안겼다.
휴가 기간 중 [복실이]와 밀크가 싸우는 모습을 꽤 자주 보았다. 대부분의 상황은 나에게 다가오려는 밀크와 이를 저지하려는 [복실이]와의 싸움이었다. 당시에는 터줏대감이었던 [복실이]가 항상 싸움에서 이겼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밀크를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한 채 군대로 복귀했다.
군대에 있는 동안 가족들과 자주 전화한 덕분에 가끔 [복실이]와 밀크의 안부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부대로 복귀한 이후로 [복실이]와 밀크가 싸우는 일은 크게 줄었다고 했다. 서열 정리가 깔끔하게 이루어진 듯 하고, 그 아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누렸다. [복실이]는 큰 형의 강아지라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인지, 동생들은 밀크가 우리 집에 온 이후 그 아이를 자기 동생처럼 돌보았다. 그래서 [복실이]는 부모님과, 밀크는 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각자 만족스러운 생활을 한다고 했다.
꽤나 많은 시간이 흐르고 [복실이]도 할머니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주도권은 밀크가 가지게 되었고, [복실이]는 풀이 죽은 모습으로 나에게 안겨 있을 때가 많아졌다. 내 품에 있을 때만큼은 밀크에게 짖어대기도 했지만, 이내 조용히 내 품 속을 더 깊게 파고들었다. 어쩔 수 없는 게 세월의 흐름이라지만 연약해지는 [복실이]의 모습을 보는 건 마음 아픈 일이었다. 하지만 동물병원에서 받은 정기적인 검진 결과 덕분에 조금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복실이]는 나이에 비해 상당히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의 작은 소망은 [복실이]와의 행복한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유지되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복실이]와의 행복한 시간이 끝나고, 힘들어했던 우리 가족들 중에는 밀크도 있었다. [복실이]와 참 많이도 싸웠건만 막상 그 녀석의 빈자리를 가장 아쉬워했던 건 어쩌면 밀크였을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자기 자리에 가만히 엎드려 힘없이 잠만 잤다. 건강이 걱정되어 병원에도 가보았지만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아마도 밀크 나름대로의 애도였던 것 같다. 어느 정도 우리 가족이 마음의 아픔을 이겨내고 일상으로 돌아갈 때 즈음, 밀크도 조금씩 예전의 밝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어쩌면 우리 가족이 힘든 시간을 좀 더 빨리 극복할 수 있었던 건 밀크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날 이후, 나는 우유를 꽤 즐겨 마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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